[People]Interview withMuyo Park (@parkmuyo) - Student 간단히 자기소개 부탁한다.이름은 박무요. 없을 무에 요긴할 요. 서울에서 섬유미술과 패션디자인을 전공했고, 현재 런던에서 패션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 패션의 지평을 넓히는 모든 참여자들을 동경하고, 그들에게 질문하며 그들과 함께 반응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현재 Brunch 와 Medium에 꾸준히 패션에 대한 자신의 글들을 포스팅하고 있다. 이 또한 패션의 지평을 넓히는 본인만의 실천이자 반응일 텐데 이렇게 글을 쓰게 된 계기에 대해 간단히 말해줄 수 있을까?올해 2월에 졸업을 하고 8월에 출국하기 전까지 6개월 정도 무료하던 시기를 헛되이 쓰고 싶지 않았다. 새로운 일을 벌이기에는 기간이 애매했고, 다른 작업을 하기에는 서울을 떠나 있던 터라 환경이 마땅치 않았다. 그래서 떠나기 전 지금까지 혼자 생각하던 내용들을 언제든 떠올릴 수 있게 기록이라도 하고 싶었다. 그렇게 대단한 결심 없이 무심결에 머릿속을 떠돌던 생각들을 글로 정리해나가던 것이 시작이지만, 언제 어디서나 즉각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효율적’인 텍스트의 성질이 본인 성향과도 잘 맞아 꾸준히 글을 쓰고자 한다. Brunch의 소개글 중 ‘책임질 수 있는 디자인을 지향합니다.’라는 문구가 인상적이다. 책임질 수 있는 디자인은 무엇일까?저 문구는 ‘제가 이해하고 있는 디자인을 지향합니다.’라고 달리 말할 수 있다. ‘이해’에 천착하게 된 이유는 순전히 본인의 성향 탓이다. 직관 혹은 직감은 새로운 현상과 내면의 외침을 포착해 창의적으로 무언가를 표현하기에 효과적인 능력이지만, 여기에 의존하고 싶지 않다. 내가 지향하는 실천은 결과적으로 사회 속에서 새로운 담론을 형성할 수 있는 실천이고, 이를 위해서는 이론적 차원의 해석과 이에 대한 기록이 필수적이다. 따라서 자신의 실천에 대한 근거를 파악하고 본인의 작업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상태에 도달하는 것, 타자의 해석과는 별개로 본인만의 의미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인지할 수 있는 디자인이 책임질 수 있는 디자인이다. 서울에서 학부를 마치고 현재 런던에서 학업을 이어 가고 있다. 학생으로서 크게 달라진 점이 있을까? Fashion Design-> Fashion 디자인 보다 좀 더 본질적인 내용에 집중하고 있다는 뜻 같다. 공부하고 있는 전공과 함께 더 자세히 설명해 줄 수 있을까?‘Design’에 대한 명시 없이 ‘Fashion’을 다루는 학교는 아무래도 패션 내에서 디자인/저널리즘/큐레이션/복식사 등 패션 산업을 구성하는 모든 영역들에 대해 포괄적으로 다룰 것만 같지만, 학교는 반대로 앞서 언급한 이미 패션 내에 존재하는 영역을 다루는 일보다는 그 외의 실천들을 패션의 범주로 끌어들이는 일을 0순위로 삼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Fashion 뒤에 위치할 단어를 규정하고 싶지 않아서 그냥 Fashion이라고 통칭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정말 개인적인 의견이다.) 사실 패션 디자인에서 패션으로 그 범위가 확장된 점은 학부에서 얻은 전반적인 이해를 토대로 더 세부적인 요소에 집중하는 일반적인 대학원 과정과 반대된다는 점에서 과연 이 시스템이 적합한지 의심이 들기도 하지만, 무엇이든 패션의 범주에 들어올 수 있도록 끊임없는 확장을 유도하고 모든 실험적인 실천들을 수용한다는 점에서 패션 스쿨들 중 하나 정도는 위와 같은 방향성을 추구하고 있어 다행이기도 하다. 단적인 예로 나는 대학원 진학이 결정된 이후로 줄곧 복식에 대한 미학적인 작업보다는 착용이라는 개념과 그 움직임에 대해 공부 중인데, 현존하는 어떤 패션의 세부 전공이 이런 연구를 수용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하지만 이 학교 덕분에, 나는 ‘Fine Art’로 넘어가지 않고 ‘Fashion’ 내에서 나의 실천이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 심지어 왜 ‘Fashion’에 포함될 수 있는지 등 패션 안에서 나의 자리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패션 내에 존재하는 영역 외의 실천들을 패션의 범주로 끌어들이는 일’과 ‘착용이라는 개념과 그 움직임에 대한 공부’는 다소 연결성이 없어 보이는데 어떤 방식으로 본인의 연구를 풀어가고 있는지 간단히 소개해줄 수 있을까?짧게 설명하자면 지금은 착용을 옷을 입는 행위 이상으로 고양하는 연구를 계획 중이다. 영어로는 wearing과 dressing을 구분한다고 이야기하는데, dressing은 우리가 일상에서 옷을 입는 행위로, wearing은 디자인 과정의 일부로 설명한다. 물론 착용을 통한 디자인은 현재 산업 내에 스타일링의 개념으로 존재하지만, 연구의 목표는 산업과 교육 현장에서 착용을 디자인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이론적 근거를 확립해 궁극적으로는 모든 착용자, 소비자가 디자인의 일부를 도맡는 새로운 디자인 프로세스 구축을 기대한다. 이는 패션 디자인의 대중화와도 연결되는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오브제가 아닌 착용이라는 인간의 몸짓을 다룬다는 점에서 퍼포먼스의 관점을 패션으로 불러들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 정도는 내가 기대하는 ‘패션 외의 실천들을 패션의 범주로 끌어들이는 일’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진정으로 패션 외의 실천들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내가 제안하는 새로운 방법론이 패션 외부 영역과 패션을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대안적인 프로세스를 바탕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실험적인 작업들을 전개하는 일이야말로 결과적으로 패션의 지평을 확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 가장 고민하고 있거나 지켜보고 있는 토픽이 있을까? 혹은 현재 작성 중인 글이 있다면?부끄럽게도 영국에 도착한 이후로는 글을 꾸준히 업로드하지 못했다. 다만 최근에 주로 고민하는 주제는 패션 내의 엘리트주의다. 위에서 언급했던 패션 디자인의 대중화라고 할 수도 있겠다. 버크민스터 풀러가 유럽식, 엘리트주의식 건축가상을 비판했듯이, 패션 업계는 과연 이 담론에서 자유로운지 와 소수의 패션 스쿨들이 주도하는 지금의 교육과 그들의 교수법이 옳은지 묻고 싶다. 또한 이 업계가 엘리트 중심적으로 작동한다면, 나 스스로도 서구권에서 석사 과정을 밟고 있는, 누구보다 그 중심에 있는 사람 중 한 명임을 인지하고 있다. 그래서 이해 당사자로서 과연 업계의 트로이 목마가 어떻게 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기도 하다. 패션을 공부하는 국내 학생들에게 유학의 필요성이 자주 화두가 되는 이유 또한 패션 업계가 엘리트주의에서 자유롭지 못한 이유가 아닐까. 실제로 그 중심에서 교육을 받고 있는 사람으로서 유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아직 학생인 탓에 산업 내에서 엘리트주의가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실감한 적이 없기도 하고 직접 겪고 있는 학교도 결국 많은 패션 스쿨들 중 하나인 탓에 함부로 말하기 조심스럽지만, 자신과 잘 맞는 학교에 간다면 기회비용이 얼마라도 좋을 가치를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다만 업계 내에서 잘 기능하는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 유학이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사실 그러한 목표라면 유학이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이제는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이후 유학에 대해 고민이 된다면, ‘외국’보다는 ‘학교’에 초점을 두는 편이 결정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과연 자신의 생각과 실천이 학교의 보호가 필요한지, 연구가 선행되어야 하는지, 다른 전공들과의 활발한 교류가 필요한지 등 이유는 다양할 테지만, 이유가 무엇이든 학교가 필요하다는 확신이 있어야 후회가 없지 않을까. 본인이 기재했던 <패션 디자인에서 학위는 무엇을 의미할까.>라는 글을 인상 깊게 읽었다. 그렇다면 실제로 패션을 공부하는 학생에게 패션 안에서 학위는 무엇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나.패션 스쿨에 들어온 사람들 모두 저마다 기술적 숙련도, 학제 간 교류, 인적 네트워크, 이론적인 접근 등 목적과 의미가 있을 터라 그 의미에 대해 함부로 재단하기 조심스럽다. 다만 학위는 곧 대학이 주는 자격이고 이 자격이 무엇을 증명하는지, 우리가 어떻게 증명할지를 생각해 보면 결국 패션 학위의 본질은 자신만의 고유한 실천에 대한 증거다. 왜냐하면 패션쇼나 전시 등의 형태로 학위 취득을 위해 대학이 요구하고 학생이 제안하는 바는 지난 시간 동안 행해 왔던 실천들의 가시화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패션이라는 광범위하고, 모호하며 그리고 또 치열한 이 영역에서 어떠한 독립적인 실천을 수행했는지, 앞으로 학생 본인만의 고유한 영역은 어디에 있으며, 비록 3/8인치 정도라도 스스로 어떻게 패션의 지평을 넓혔는지 선언할 기회에 대한 보장, 이것이 산업의 바깥에서 독립적인 작업을 보장하는 패션 스쿨의 학위가 가지고 있는 존재 가치라고 말하고 싶다. 본인이 연재하고 있는 글들에 관해 이야기를 해보자. 박무요의 글을 읽다 보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글이지만 타인의 이해를 강요하기보다 패션이라는 장르 속에서 그에 관련된 대화를 하고 싶은 욕구가 은연중에 보인다. 본인은 패션 시장 안에서의 자기주장 및 표현들이, 그것이 평론 혹은 심지어 발표일지라도, 어느 정도는 일방적이기보단 양방향적으로 이뤄지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실제로 본인의 생각이 어떤지 궁금하다.패션이 점점 폐쇄적이고, 관행적이며 일방적인 영역으로 되어가는 듯한 기분이 든다. 물론 업계의 참여자 중 한 명이기 때문에 다른 영역에 비해 유난히 비판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데서 비롯된 기우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역시 패션이 야기하고 있는 문제들이 너무 많아 보인다. 그리고 기우가 아니라면, 패션이 일방적인 소통으로 작동하는 곳이라면, 패션 내에서 지속 가능성에 대해 목소리를 내기 이전에 과연 지속할 가치가 있는지부터 물어봐야 하지 않나 싶다. 왜냐하면 패션이 본래 양방향적 소통 방식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패션은 복식과 신체, 사회와 개인 간의 대화이며, 그들의 대화를 바탕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믿는다. 결론적으로 지속할 가치가 있는 패션과 양방향적 소통을 바탕으로 하는 패션은 필요충분조건이다. 그리고 이 대화는 텍스트, 창작, 집단행동, 개인의 착용 등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질 수 있다. 대화하고 싶어 하는 욕구는 아무래도 패션이 앞으로도 지속할 가치가 있는 영역으로 자리하도록 계속 소통하고 싶은 소망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이미지를 통한 소통이 패션 업계의 본질이다. 하지만 박무요는 패션 안에서의 여러 가지 대화법 중 특히 텍스트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글을 써 내려가는 듯하다. 이미지만을 이용하기 보다 글과 말이 수반되는 소통은 사실 패션뿐만 아니라 모든 장르 안에서 필요하다. 하지만 패션이라는 장르 특성상 긴 문장들과 함께한 이미지들은 자칫 고루해 보일 수 있다. 상품 판매가 중요한 브랜드 입장에서 텍스트의 활용이 어느 정도로 이뤄져야 하는 게 좋을지 혹은 더 나아가서 브랜드가 이미지뿐만 아니라 텍스트를 활용해 소비자와 건강한 방향으로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지에 대해 관찰자 입장에서 생각해 본 적이 있을까?롤랑 바르트는 그의 저서 <The Fashion System>에서 글로 쓰인 의복에서는 모호한 일시성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서술한 바 있다. 일시성을 지우더라도 옷은 나름의 의미가 있겠지만, 일시성이 패션의 핵심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결국 패션이 텍스트에 의존한다면 패션의 다른 다양한 측면에 대한 간과로 이어질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결정적으로, 텍스트 환원적인 방식은 되려 옷에서 몸의 착용이 배제될 수 있다. 물론 텍스트는 우리의 생각을 구체적이고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언어라고 믿고, 그 중요성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하지만 제품의 정보가 아닌 이미지에 대한 설명, 해석은 그렇기에 독이 될 수 있다. 후자의 경우 텍스트가 제공하는 정확하고 명료한 설명이 마치 일방적인 강요가 되어 해석의 여지를 제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통을 끌어낼 수 있는 제품이라면 자연스럽게 소비자도 무언가를 표현하고 싶을 터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소비자 자신만의 수용과 해석이 전제조건이라고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긴 문장들과 함께한 이미지’라면 제품이 텍스트에 매몰되어 있다는 생각을 버리기 힘들 것 같다. 다만 아카이브의 관점에서, 브랜드 차원에서의 텍스트의 활용은 다른 문제다. 소비자와 제품이 마주하고 있는 상황에서의 텍스트를 통한 설명이 아니라, 브랜드의 지난 기록을 돌이켜보는 아카이브의 범주에 이미지와 영상 같은 시각 언어와 더불어 당시의 디자인 과정, 돌이켜 봤을 때의 새로운 해석과 의견 등을 정리한 텍스트가 포함된다면 디자이너들뿐만 아니라 브랜드의 바깥에서도 이 제품들이 동시대에서 어디에 존재하는지, 어떤 역할과 의미를 지내는지 도움이 되지 않을까. <넷플릭스는 패션을 지배할까?>라는 글에서 본인은 알고리즘과 패션의 관계를 이야기하며 패션의 급진적인 부분이 미래에 불필요한 부분으로 치부될 수 있음을 걱정했다. 시장 안에서 펑크와 아방가르드의 존재를 위협하는 요소가 알고리즘 말고 또 있다면 그것이 무엇일지 생각해 본 적이 있을까?이상적인 몸. 사람들은 코르셋을 의상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과거의 유물로 간주할 테지만, 사실 코르셋은 성별을 가리지 않고 여전히 존재한다. 21세기의 코르셋은 건강, 외모와 같은 담론과 연결되어, 몸에 대한 자발적 관리라는 형태로 존재한다. 자발적 관리는 곧 개인의 끊임없는 자기 감시와도 같다.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의 몸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변형 가능한 대상으로 여긴다. 결국 개별적인 몸들은 모두 이상적인 몸이라는 집단적인 통념에 의해 통제받는다. 이상적인 몸은 개개인이 스스로를 감시하고, 정해진 틀에 몸을 맞추도록 하는 빅브라더 같은 존재가 되었다. 문제는 이 권력에 의해 몸 사이에 계급이 결정된다는 점이다. 계급은 지위를 구분하고, 지위는 패션 내에서 주류와 비주류, 정상과 비정상을 결정해왔다. 반항, 저항 운동을 기반으로 하는 펑크와 아방가르드에게는 그들이 전복해야 할 새로운 권력이 설정된 셈이다. 다만 자기 자신과 상대방에 대한 감시를 요구하는 이상적인 몸은 마치 파놉티콘처럼 복식을 통한 개인의 정체성 표출을 가두고, 펑크와 아방가르드조차 억압하고 통제할 수 있는 권력이라는 점에서 지난 도전과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현시대에 전위적인 모습으로 새로운 패션의 개념을 추구하는 디자이너들에게 힘을 실어줄 만한 이야기는 없을까?전례 없는 무언가를 시도하거나 시스템을 바꾸고자 하는 도전은 대개 공감도 지지도 얻기 어렵다. 심지어 가끔은 스스로도 이 일이 과연 쓸모가 있는지 회의가 들 수도 있다. (적어도 나 자신은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감히 우리라고 묶어서 부르자면, 우리의 고민거리는 어쩌면 사실 매우 사소한 고민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1/8인치의 차이, 단추의 위치, 혼자만의 공상, 흐릿한 잡념. 새로운 패션을 위한 고민의 출발점은 그런 것들에 있다. 무리의 중심에서는 보이지도 않을, 관심을 가져야 할지조차 의문인 고민들. 자기 자신과 주변 동료들만이 알아보는 미묘한 차이를 따지는 일.하지만 우리는 이미 알고 있고, 지켜봐 왔다. 그 고민이 패션을 어디까지 이끌었으며, 우리의 위 세대가 얼마나 패션을 확장해왔고, 그 패션이 세상을 어떻게 바꾸었는지를. 사람들은 패션을 통해 자신을 표현한다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패션이 사람들을 통해 세상을 그려내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는, 적어도 당신들은, 오늘도 그 일에 누구보다 기여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니 부디 흔들림 없이 계속 정진하셨으면 하는 바람을 전한다. 포스팅된 여러 글들 가운데 <옷이 먼저일까 패션이 먼저일까.>라는 제목이 눈에 띄었다. 해당 제목과 같은 고민은 당사 안에서도 항상 이뤄지고 있는데 글의 내용과는 무관하게 제목이 담고 있는 비판적 시각으로 이 브랜드를 바라본다면 어떤 글을 쓸 수 있는지가 궁금하다. 나는 옷과 패션의 분리는 곧 물리적인 몸과 패션의 분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해당 글은 결국 옷을 중심으로 몸과 패션 사이의 권력 게임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ceimou를 바라보면 몸과 패션 모두로부터 거리를 두고 관조하는 자세가 보인다. 왜냐하면 <옷이 먼저일까 패션이 먼저일까>에서 ceimou는 옷의 손을 들어주고 있어 보이지만, 그 옷은 신체로 치환할 수는 없는 오브제로서 옷이기 때문이다. ceimou의 인스타그램과 웹사이트 제품 화면에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옷은 화이트 큐브 안에서 공중에 둥둥 떠 있는 상태로 전시되어 있을 뿐이다. 개인적으로 ceimou의 제품에서 얻는 즐거움은 원단과 부자재의 변주에서 오는데, 이들 모두 ceimou의 본질이 몸도 패션도 아닌 옷에 있음을 방증한다. 어쩌면 ceimou는 거리에 위치하면서도 들어서는 순간 사면의 흰색 벽을 통해 이질적인 환경을 제공하는 갤러리와 같은 공간을 패션 내에서 구축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브랜드는 이처럼 제품의 디자인뿐만 아니라 제품을 소개하는 방식을 통해 브랜드가 어떤 가치에 중점을 두고 소비자에게 접근해야 할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뿐만 아니라 'sustainablity'에 대한 주제가 시장 안에서 지속적으로 화두 되는 만큼 패션 시장 그 자체 또는 더 나아가 패션이 다른 영역에 미치는 영향처럼 보다 거시적인 부분까지 고려해야 하는 분위기가 팽배해졌다. 본인은 <패션은 지속 가능한가.>라는 글을 통해 '지속 가능성'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밝혔다. 그렇다면 패션을 소비하는 한 개인의 입장에서 소규모 자본의 브랜드가 이 '지속 가능성'에 대해 갖춰야 할 태도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을까?‘지속 가능성’이라는 단어는 이제 몇몇 브랜드의 지향점이 아닌 업계 전체의 의무 비슷한 무언가가 되었다. 이 흐름은 앞으로 더욱 공고해질 것이고, 개인적으로도 무척 필요하던 일이 현실화되어가는 중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동시에 이 문제가 하나의 ‘트렌드’이자 마케팅으로 여겨지는 상황도 현실이다. 지속 가능성이라는 가치에 대한 고려가 정말 본인의 태도인지, 일종의 워싱으로 브랜드를 포장해야 할 것만 같은 조바심인지 되묻는 일이 우선되어야 하겠다. 나아가 소규모 자본의 브랜드라면 컬렉션과 대량 생산을 통한 트렌드 추종, 규모에 의한 사업적 성과보다는 자신들만의 방향으로 꾸준히 나아가고자 하는 태도를 이미 견지하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 태도는 비약이라면 비약이겠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지속 가능성과 깊은 연관이 있는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자신이 만드는 옷의 재료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얼마나 탄소를 배출했으며 누가 생산하는지 등을 인지하고 있는 일 역시 중요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지속 가능한 옷의 본질은 소비자가 자신의 옷장에 오래 간직할 수 있는 옷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소재를 정당한 거래를 통해 생산해 소비자가 버릴 이유가 없고 값이 아깝지 않은, 말 그대로 ‘좋은’ 옷을 만드는 일이야말로 지속 가능성을 실천하는 방법이 아닐까. 비슷한 디자인을 ‘찍어 내는’ 곳들과 달리 소장할 가치를 옷에 부여하고자 하는 태도야말로 패션이라는, 수많은 문제를 야기하는 산업 속에서 지속 가능성을 고려하는 길이라고 말하고 싶다. 패션 업계 안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직업군들이 존재하지만 대게 한 브랜드의 디렉터나 디자이너에게 매료되어 패션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브랜드를 대표하는 인물들뿐만 아니라 패션 시장의 발전에 도움을 준 이들은 수도 없이 많다. 역대 패션 업계 안에서 소위 특정 브랜드의 프론트맨(frontman)이 아닌 인물들 중 본인에게 가장 영향을 준 인물은 누구일까? The Fashioned Body (2015)의 저자, 조앤 앤트위슬(Joanne Entwistle). The Fashioned Body는 패션이 패션을 위한 패션이 아니라 몸, 젠더, 경제 등의 문제와 연결 지어 사회 속에 존재하고 기능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책이다. 패션과 복식이 어떻게 다르면서도 함께 작동하는지, 복식과 옷은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지 등에 고민해 볼 수 있고, 디자인 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패션을 총체론적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착용과 옷을 불가분 한 관계로 간주하던 나의 ‘직감’을 논리적으로 왜 그러한지 설명해 준 책이기도 하다. 하지만 박무요도 역시 뎀나 바잘리아(Demna Gvasalia), 레이 가와쿠보(Rei Kawakubo), 이세이 미야케(Issey Miyake)에 관한 글들을 포스팅했듯이, 우리는 한 시대의 패션을 책임지며 우리의 동경을 이끌어낸 인물들을 잊을 수 없다. 본인을 결과적으로 패션이라는 장르로 끌어들인 인물이 과연 누구일까?슈트 아래 회색 뉴발란스를 신은 이브 생로랑 디렉터 시절의 스테파노 필라티. 정확히 언제 접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초등학생 5-6학년 정도? 그래도 아직까지 그 사진만큼은 선명히 기억하고 있다. 정장에 운동화가 나의 첫 아방가르드였고, 패션이었다. 그의 사진 덕분에 당시에 처음으로 패션을 단순히 멋있는 옷을 입는 것이 아닌 새로운 도전 비슷한 그 무언가 정도로 여기게 되었던 것 같다. 본인이 연재했던 글들 중에 독자들에게 가장 추천하고 싶은 글이 있다면 간단히 소개 부탁한다.<Issey Miyake> - 그리고 미야케 이세이.바잘리아, 가와쿠보에 이어서 다시 특정한 디자이너 한 명을 다뤄보자고 생각하던 즈음, 미야케에 대한 글을 써볼까 생각이 들던 날, 그날 그의 부고 소식을 접했다. 그래서 소식을 접한 후 무작정 글을 써 내려갔던 기억이 난다. 기존의 글들은 3-4일 정도 여유를 두고 검토를 하며 작성했던 반면에 이 글은 그날 작성을 마쳤다. 그래서 다른 글들에 비해 비교적 짧고, 어조, 사용하는 단어 등 글의 분위기도 다른 글들과 사뭇 다르고, 어쩌면 가장 부족한 글일 수도 있다. 그만큼 주관성이 부각된 글이다. 존경하는 디자이너에 대한 개인적인 팬심이 가득 묻어있기도 하고. 그럼에도, 왜 그가 위대한 디자이너인지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은 지금 시대에 실험적이고 독자적인 방향을 추구하는 디자이너들이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하는지 고민해 볼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사람에 따라 흥미롭지 않은 디자이너일 수도 있지만, 앞서 언급한 관점에서 읽어본다면 전해지는 바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인터뷰에서는 모두 다루지 못했지만 Brunch 와 Medium 을 통해 패션이라는 장르 안에서 정말 여러 가지 주제에 관한 자신의 생각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한 번쯤은 박무요의 글들을 접했으면 하는데, 이 글들이 결국 본인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언젠가 내가 풀어야 하거나 적어도 다음 세대와 함께 이야기를 이어 나아가야 할 일종의 to-do 리스트. 물론 언젠가는 패션에 대해 글을 쓰는 일이 직업적으로도 이어질 수 있기를 바라지만, 그런 것들을 바라면서 시작한 일도 아니었거니와 당장 직업적인 성과를 기대하기에는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다. 역시 아직은 단지 어릴 때 하던 고민과 생각들을 미래에도 잊지 않기 위한 기록 그 이상의 무언가는 없다. 실제로 제목들이 던지는 질문들은 금방 해결할 수 없는 다소 거창한 논제들인지라 현재로선 스스로가 패션에게 던지는 질문들 또는 패션에 대한 본인의 반응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패션에서 글을 쓰는 일 말고 Design이나 Fine Art를 할 계획은 없을까?여전히 스스로를 글로 정리하는 사람보다는 물리적으로 무언가를 구현하는 사람으로 생각한다. 지금 당장 진행 중인 바는 없지만, 만들고 싶은 욕구는 늘 가지고 있다. 가장 가까운 계획은 앞서 언급한 착용의 개념을 시각적으로 풀어내는 작업을 구상 중이며, 거시적으로는 매체 상관없이 패션과 연결할 수 있는 여러 영역을 다뤄보고 싶은 마음이다. (스튜디오 욕심도 있다!) 런던에서 생활한지 벌써 약 4개월이 지났다. 타지 생활은 만족하고 있을까? 런던에서의 거시적인 계획 또한 궁금하다.다행히 스스로의 삶에는 무던한 편이라, 별다른 적응 기간 없이 지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내가 천착하는 주제인 몸짓과 착용에 대한 공부를 지속하기 위해 박사 진학 역시 고려 중이지만, 비용상의 문제로 그 계획을 런던에서 이루겠다는 욕심도 확신도 없다. 가까운 시일 내에 패션 산업의 한 곳에 소속되어 일할 계획도 없다 보니 런던이라는 대도시에 대한 미련도 없고, 공부를 이어갈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어디든지 떠날 계획이다. 다만 산업적 측면과 달리 패션의 이론적인 측면에서는 여전히 영국과 유럽이 가지고 있는 우위를 실감하고 있어 아무래도 학생으로서는 최대한 해외 생활을 오래 유지하고 싶은 마음이다. 멀리서 항상 응원하겠다. 인터뷰를 마치며 꼭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우선 정식으로 연재 중인 글이 아님에도, 이 글들을 꾸준히 읽어주고 나아가 직접 인터뷰를 제안해 준 것에 대해 무척 감사하고 기쁜 마음이다. 이 인터뷰가 박무요라는 개인에 대한 발견뿐만 아니라 패션 내에서 이러한 대화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을 뜻한다고 생각해 더욱 의미가 깊었다. 그리고 이번 인터뷰가 특정 브랜드의 아카이브 중 하나, 특정 개인의 기록물 그 이상의 무언가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질문들과 답변들이 독자분들에게 이어지길 바라고, 이 대담에 각자의 생각과 방법으로 함께 하셨기를 바란다. 끝까지 읽어주신 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CREDITArtist: Muyo Park (@parkmuyo) Photographer: Haeun Kim (@haeunkiiim)Editor: CEIMOU (@ceimou)Product: 002 Shirt / 012 Trous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