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tty Images / David Paul Morris 청바지와 반바지가 공식적인 자리에서 용인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고, 한때 셔츠 역시 속옷처럼 외부로 노출되어서는 안 되는 의복으로 여겨졌다. 이처럼 패션은 넓은 맥락에서 편의성과 일상성을 향해 변용됐다. 옷이 오랫동안 개인의 직업, 부,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중요한 지표 역할을 해왔기 때문에, ‘격식을 갖춘 복장'의 개념은 앞으로도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러한 격식의 기준이 점차 ‘캐주얼'한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이런 면에서 패션 산업은 내부의 기존 권위와 관습에 도전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정립해 왔다고 볼 수 있다. ©Guilherme de Beauharnais 이러한 패션의 성질을 고려하더라도, 오트 쿠튀르가 지닌 상징성 - 패션의 정점, 첨단 기술, 정교한 장인 정신 - 은 여전히 유효하며 심지어 패션 산업의 중요한 측면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비록 현대에 이르러 오트 쿠튀르 시장이 대량 생산되는 기성복에 밀려 점차 축소되고 있지만, 이 무대는 여전히 각 하우스의 모든 역량을 동원해 유행을 초월하는 의상들을 선보이는 곳으로 통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제나 논란을 불러 모으는 발렌시아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뎀나는 이처럼 고도로 정제된 세계에서조차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시각적 착시와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디자인을 통해 오트 쿠튀르의 전통적 권위를 의도적으로 흔들고 있다. ‘진정한 드레스메이커', ‘오트쿠튀르의 마스터'로 불리는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의 하우스가 1968년 이후 거의 반세기 만에 쿠튀르 컬렉션으로 복귀한다는 소식에 열광했을 패션의 광신도들이 했던 기대와는 분명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 셈이다. ©Balenciaga “일상적인 쓰레기를 예술로 승화시키는 작업은 뎀나의 발렌시아가에서 오랫동안 이어져 온 시그니처였으며 (...) 온라인 쿠튀르 스토어에서는 많은 아이템의 제조 과정에서 소요되는 노동량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평범하거나 심지어 기능조차 없는 아이템에 높은 가격을 정당화하려는 시도로 보입니다. (…)”1 발렌시아가의 2024년 가을/겨울 오트 쿠튀르 컬렉션에 대한 다이어트 프라다의 위와 같은 논평은 뎀나의 방식에 대한 업계의 복잡한 반응을 대변한다. 실제로 뎀나는 2020년 발렌시아가의 쿠튀르 복귀 이후 줄곧 ‘하위문화적 요소'를 쿠튀르에 주입해 오트 쿠튀르의 이미지와 일견 상충하는 접근 방식을 고수해 왔다. 이번 컬렉션 역시 비닐봉지로 만든 이브닝 가운, 재활용 원단을 활용한 스웨트셔츠, 축구 유니폼, 유화로 그린 티셔츠 등 오트 쿠튀르의 무대에서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아이템들이 등장했다. 발렌시아가의 쿠튀르라는 이름이 지닌 상징성을 떠올려보면, 뎀나의 컬렉션 속 ¾ 길이의 소매, 코쿤 실루엣, 화려한 모자 등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의 유산과 수백에서 수천 시간이 소요되는 정교하고도 실험적인 원단 개발 작업조차, 뎀나가 2020년 발렌시아가의 쿠튀르 복귀 당시 본인이 언급했던 “쿠튀르는 최고 수준의 미학적, 질적 아름다움의 표현"이라는 주장을 완전히 뒷받침하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그것(쿠튀르)는 드레스 제작의 또 다른 가능성을 제시할 뿐만 아니라 발렌시아가의 현대적인 비전을 그것의 기원으로 되돌려줍니다. 쿠튀르는 트렌드를 뛰어넘습니다. 쿠튀르는 최고의 미적, 질적 수준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입니다.”2 ©Vogue / Irving Penn 어쩌면 그래서 뎀나와 발렌시아가에 대한 비판은 (비록 그들은 이제 비판에 익숙하더라도) 일견 타당해 보인다. 그들의 컬렉션이 전통적인 쿠튀르에 대한 존중이 결여되었다는 인식은 물론, 심지어 이를 쿠튀르에 대한 도전으로까지 해석하는 시각들조차 모두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동시에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의 유산이 당시 여성의 허리를 강조하는 디올의 라인에서 벗어나 ‘몸과 옷 사이의 공간'이라는 새로운 드레스메이킹의 지평을 연 혁신적인 정신인지 아니면 그의 스타일을 계승한 패션 디자인적 요소들인지 현재 뎀나의 작업을 비판하는 이들에게 되묻고 싶다. 오트 쿠튀르는 전통적으로 가장 사치스럽고 가장 고귀한 패션의 대명사였지만 동시에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것들을 선보이는 실험의 장이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날 쿠튀르 하우스는 파리 의상 조합의 외부에서 전례 없던 패션이 등장하는 시대를 마주하면서 그 권위와 역할 모두 약화되었다. 달리 말해 오늘날 쿠튀르의 존재 이유는 하우스의 자기 복제와 아카이브의 재현 사이 미묘한 경계를 넘나들며 유령을 상품화하거나 이름 모를 부호의 하루를 위한 드레스에 달린 가격표를 정당화하는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Juergen Teller 역시 뎀나의 쿠튀르 컬렉션을 보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저런 옷을 과연 누가 사는가’, 혹은 ‘저런 옷이 쿠튀르로 불릴 자격이 있는가’가 아니라 오늘날 쿠튀르의 역할은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로 영점을 재조정하는 것이다. 과거 쿠튀르가 대변했던 패션의 다양한 시도와 이를 수용하는 정신이야말로 패션 업계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고민이 단순히 생산을 줄이고 업계의 무의미함을 자조적으로 받아들이는 자기혐오와 회의주의로 귀결되지 않도록 하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점차 일상과 대중에게 다가가는 패션의 역사를 보면, 패션의 진정한 가치 중 하나는 자신의 천박함과 속물성을 가감 없이 드러내어 고고한 영역을 ‘저속한’ 상업성의 세계로 끊임없이 불러들이는 데 있을 것이다. 새로운 패션 디자인의 영역을 개척하고 당시 디자인 관행에 도전한 쿠튀리에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처럼, 그의 하우스에서 뎀나는 오트 쿠튀르가 고립된 럭셔리의 정점으로 머무르지 않고 여전히 작금의 사회적 규범과 기대에 도전하는 플랫폼으로 기능하고 있음을 역설하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솔직히 말해서, 아무도 쿠튀르가 필요하지 않습니다.”3, 뎀나 바잘리아 1 Diet Prada's Instagram post, 2024. 7. 9. Available at here 2 Belle Hutton, "Balenciaga Is Returning to Haute Couture", AnOther, 2020. 1. 20. Available at here3 Vanessa Friedman, "The Incredible Disappearing Dress", The New York Times, 2024. 6. 27. Available at here BY MUYO PARKOCTOBER 7, 2024 >READ THE ENGLISH VERSION OF THIS ARTICLE> READ OTHER ARTIC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