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터 반 바이렌동크(패션 디자이너, 교육자): 사람들이 요즘 빈티지 의류를 많이 구매하는데, 이는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좋은 현상이지만 현재의 고유한 스타일이 부재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길거리에서 더 이상 (70년대, 80년대, 90년대를 떠올리면 바로 알아볼 수 있는) 그 전형적인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죠. 지난 10년간 이런 것들을 잃어버린 것 같아요. 블리스 포스터(패션 평론가): 여러 차례 유행의 파도가 왔다 갔음을 목격한 당신은 어떻게 해야 사람들이 향수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젊은 사람들이 향수에 젖어 있지 않고 지금 이 순간, 자신의 시대를 받아들이도록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까요?¹ ©Marleine van der Werf / Audax Textielmuseum Tilburg 블리스의 릴스에 올라온 이들의 대화는 누구를 지적하는 걸까? 과거에 매몰되어 지금 시대의 디자이너들을 외면하는 소비자들에 대한 우려일 수도, 과거 한 시대를 대표하던 디자이너들과 비교해 그러고 있지 못하는 지금의 세대에게 경각심을 촉구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혹은 둘 다거나). 어느 쪽이든지 당신이 그들의 대화에 동의가 된다면 지금의 패션은 과거에 비해 지루한, 에너지가 소진된 상태라는 점에 어느 정도 공감을 했다는 뜻이겠다. 과연 60년대 이브 생 로랑의 르 스모킹², 80년대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파워 슈트³, 그리고 90년대부터 00년대 헬무트 랭, 질 샌더, 마르틴 마르지엘라와 같은 당시 서구 미니멀리즘과 아방가르드 디자이너들의 전성기를 떠올려 보면 지금만의 독창적인 스타일이 형성되고 있는지 의문을 가지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블리스와 발터가 지적하는 과거에 대한 향수, 그러니까 소비자는 이전 세대 디자이너들의 아카이브 발굴에 더 흥미를 느끼고, 디자이너들은 과거의 디자인을 ‘목발’로 삼지 않으면⁴ 디자인을 할 수 없는 세태가 당연해 보이기까지 한다. Run 11 fashion show, 2000. Photo: Antoinette Aurell. Courtesy Susan Cianciolo and Bridget Donahue, NYC 위에서 언급된 디자이너들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디자이너도 소비자도, 디자인의 출처든 아카이브 수집이든, 우리 모두가 그토록 열광하는 과거는 디자이너 자신이 곧 창업가이자 자신의 이름이 곧 브랜드의 이름이었던 시기다. 그들의 시대라고 지금의 패션 산업과 비교해 그렇게 낭만적인, 순수한 예술혼만으로 자립이 가능했던 시기는 아니지만⁵, 어쨌든 시장이 실험적이고 새로운 것을 찾아다니던 시기였다. 운이 따른다는 전제 하에 디자이너가 전례 없던 비전을 가지고 등장한다면 시장이 그것을 기꺼이 수용하던 시기였다. 달리 말해, 그 시기의 디자이너들에게 누군가의 밑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경력을 쌓고 종국적으로는 자신의 이름을 건 브랜드로 자신의 디자인 철학을 증명하기 위해 실력을 갈고 닦는 시기였다⁶. ©Muyo Park 이제 2020년대를 돌아보자. 패션 산업을 뒷받침하는 자본은 하위문화의 저항을 새로운 시장성으로 둔갑시켜 그들의 이름을 자신의 울타리 안에 둔 것으로도 부족했는지 이제는 떠오르는 재능들을 모두 선취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동시대 가장 주목받는 디자이너들은 자신의 이름과 동명의 브랜드를 ‘하우스’로 성장시키기보다 기존 명품 하우스의 역사를 재해석하는 데 열과 성을 다한다. 디자이너의 독립 브랜드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되기 위한 발판, 곧 자신의 취업 포트폴리오이자 이력서가 되는 셈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버질 아블로가 그러했고, 조나단 앤더슨이 그러고 있으며, 뎀나는 자신의 베트멍과 분리된 지 오래다⁷. 특히 두 비교군 사이 가운데 어딘가에 위치하며 두 시대를 모두 경험했고 또 살아남은 라프 시몬스의 궤적은 이 변화를 - 독립 디자이너의 시대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시대로 - 가장 잘 설명한다. (수집가들이 열광하는 컬렉션 중 하나인) 2000년대 초반 자신의 브랜드 라프시몬스의 초기 작업으로 명성을 얻은 이후 그는 질 샌더, 디올, 캘빈 클라인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와 자신의 브랜드를 병행해 왔다. 그리고 그는 미우치아 프라다와 프라다의 공동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역임하면서 2023년 브랜드 라프 시몬스의 마지막 컬렉션을 공개했다⁸. 이러한 선례 아래 어린 디자이너들은 더 이상 요지 야마모토처럼 수십 년간 (파산과 같은 위기를 겪으며 불안하게) 자신의 철학을 관철할 수 있는 자신만의 브랜드를 운영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좋은 대우, 안정성을 담보한 어딘가의 디렉터로 영입되길 바라는 그들에게 최고의 덕목은 오히려 새로움보다 누군가의 아카이브를 잘 해석하는 능력이다⁹. ©Patrick Kovarik / AFP / Getty Images 요약하자면 지금은 디자이너 개인이 브랜드화, 기업화되어 대기업들이 브랜드 인수만큼이나 브랜드로서의 가치, 팬덤을 확보한 인물을 영입해 자산화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블리스와 발터의 대화는 이 맥락에서 읽을 수 있지만, 현 세태에 대한 그들의 대화는 그들의 표현에서 알 수 있듯 개개인을 향한 지적 내지 아쉬움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자신만의 실험을 지속하는 첨단 디자이너들이 있고 그들의 지지자가 사라지지 않는다면 비판이 향해야 할 곳은 업계 전반적으로 디자이너가 파생상품 설계자가 되는 구조적 전환이다¹⁰. 즉 디자이너와 소비자가 과거에만 머물러 있다면 그 책임은 생산자의 지속가능성 담론이나 소비자의 수집에 대한 열광 탓이 아니다. 책임은 패션 디자인을 과거의 ‘오리지널'이나 ‘헤리티지'를 기초자산 삼아 ‘디렉터 교체'라는 변동성으로 가치를 창출하는 파생상품 구조로 전환한 대형 그룹과 그것을 수용하는 하이 패션 시장에 있다. 이 구조에서 실패한 디자이너와 그 팬덤은 사라지지만 기초자산을 독점한 그룹 전체의 포트폴리오는 끊임없이 우상향하고 그들은 또 끊임없이 새로운 파생상품을 발행할 수 있다¹¹. 이 생태계에 대한 지적 없이 소비자들에게 지속가능성을 면죄부로 삼아 과거 숭배에 몰두하지 말라거나 디자이너들에게 아카이브를 목발로 삼지 말라는 요구는 그 비유만큼이나 문제가 있다. Bill Cunningham 설령 개인이 그 과정을 감내하더라도, 또 다른 문제는 ‘시대를 대표하는 스타일'로 역사에 기록되는 것이 대중과 괴리된 극소수의 취향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이다. 지난 세대와 현세대를 비교하며 작금의 부재를 지적하는 것은 지난 세대의 성역화 혹은 낭만화를 전제로 한다. 이는 하우스가 자신들의 창립자를 신화화하는 시도들과 다를 바 없다. 여기에는 미래가 항상 과거와 구분되고 새로워야 한다는 강박이 기저에 깔려있다. 이 강박은 패션을 서구 복식사 연대기로 축소해 왔을 뿐만 아니라 유행은 도래하자마자 구식이 된다는 산업 내 오랜 선동을 가능하게 했다. 이 선동은 그들만의 리그 바깥에 있는 대다수 독립 디자이너의 창작과 소비자들의 착용을 뒤처진 것으로 둔갑시켰다. 개인이 독립적인 실험, 아마추어리즘, 시행착오를 감당할 여력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시대를 대표하는 스타일의 부재를 지적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부재 속에서 지금 거리의 특성은 무엇이며 대다수 창작 활동과 착용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질문하고 밝혀내는 것이다. ¹ Bliss Foster (2025.05.29.) Available at here² 1966년 AW 컬렉션에서 이브 생 로랑은 최초의 여성 턱시도 ‘르 스모킹'을 선보였다.³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상징적인 디자인으로, 남성 수트의 테일러링과 소재를 여성복에 적용했다.⁴ 각주 1번과 같은 포스트에서 블리스 포스터는 다음 댓글을 달았다: “우리 모두가 지나치게 과거를 디자인의 목발로 삼고 있습니다.”⁵ 위에서 언급된 디자이너들의 대다수가 패션 그룹에 브랜드를 매각하거나 패션계를 떠났다. 조르지오 아르마니나 꼼데가르송처럼 수십 년에 걸쳐 자신이 ‘제국’이 된 경우를 제외하면 매각을 한 디자이너들만이 지금까지 우리에게 기억되고 있다.⁶ 가령 입 생 로랑은 디올에서, 장 폴 고티에는 피에르 가르뎅에서, 마르틴 마르지엘라는 장 폴 고티에에서, 라프 시몬스는 발터 반 바이렌동크에서 일했다.⁷ 2019년 9월 뎀나 바잘리아는 그의 형제 구람 바잘리아와 함께 설립한 베트멍(현재 VTMTS)을 완전히 떠났다.⁸ 업계 관계자들은 패션 산업의 불안정한 재정 상황과 프라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역할에 전념하기 위해서라고 추측했다. Chloe Mac Donnell (2022.11.22) ‘Raf Simons to close fashion label after nearly three decades’, Guardian, Available at here⁹ 블리스 포스터의 또 다른 게시물에서 패션 디자인 학생들 중 다수가 가장 좋아하는 디자이너로 조나단 앤더슨처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이름을 언급한다. Bliss Foster (2025.07.21) Available at here¹⁰ 특히 젊은 디자이너들일수록, 가령 브랜드를 해석할 능력에 대한 의문과 그 유산에 대한 존중 부족 같은, 새로 임명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언론으로부터 항상 받는 비판에 이미 익숙할 것이다.¹¹ 피비 파일로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셀린느 하우스 자체의 아카이브에서 파생된 피비 파일로의 셀린느는 ‘올드 셀린느’가 되어 현재 브랜드 ‘피비 파일로’를 가능케 했다. BY MUYO PARKMARCH 16, 2026 >READ THE ENGLISH VERSION OF THIS ARTICLE> READ OTHER ARTIC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