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PITAL 1985년, 히라타 토시키요는 오카야마 고지마 지역이 “일본 데님의 수도”로 불리는 데서 영감을 받아 ‘수도(Capital)’라는 이름으로, 미국 데님 복각을 전문으로 하는 의류 공장을 설립하였다. 이후 2002년, 그의 아들 키로 히라타가 합류하면서 브랜드는 ‘Kiro + Capital’을 축약한 오늘날의 ‘Kapital’로 자리 잡게 되었다. 캐피탈은 기존 아메리칸 워크웨어 브랜드들과 달리 완벽한 복각을 추구하면서도 보로1와 사시코 스티치2처럼 일본의 전통 수공예 기법들을 적극적으로 도입해 대량 생산된 데님의 대안으로 자리매김했다. 나아가 캐피탈은 미국 육군 야전 재킷과 일본 기모노 패턴을 혼합한 ‘링 코트’나 감물로 염색된 해군 부츠처럼 미국 반문화 코드와 일본 전통을 융합한 컬렉션들을 선보이며 스트릿웨어 커뮤니티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는 스트릿웨어가 럭셔리 시장에 진출하던 2010년대, 킴 존스의 루이비통과 협업한 2013 봄/여름 컬렉션에서 캐피탈의 시그니처인 패치와 염색 기법이 테일러드 수트와 결합하면서 더욱 주목받았다. 이처럼 옷의 재료와 기법에 집중하는 캐피탈의 접근법은 당시 스트릿웨어의 중심에 있던 버질 아블로의 방식과 차별화되면서 캐피탈을 컬트적 인기를 구가하는 브랜드로 자리 잡게 했다. ©KAPITAL 상징적인 독립 데님 브랜드 중 하나였던 캐피탈은 2024년 4월 창립자의 별세 후 채 1년도 지나지 않은 올해 1월, LVMH 산하 사모펀드 L Catterton3에게 ‘조용히’ 지분을 대량 매각하며 업계에 큰 충격을 안겼다4. 비평가들과 소위 ‘팬덤’에게 대기업의 지분 투자는 독립 브랜드의 자율성과 실험 정신을 억제하는 일종의 식민화로 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캐피탈의 경우, 경영적 관점에서 수용하기 어려운 사시코 스티치와 아이조메5 등 장인 정신에 뿌리를 둔 제작 방식을 고집해 왔기에, 이번 매각으로 인해 사모펀드가 추구하는 재무적 효율성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브랜드 고유 역사와 정체성이 훼손될 것이라는 우려가 더욱 컸다. 단적으로 캐피탈의 공정에 대한 집착이 효율성으로 대체되는 것을 원치 않는 팬들은 브랜드 지분을 상실한 키로 히라타가 자신의 발언에 책임질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었다. 키로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청바지는 미국에서 시작되었고, 제 아버지는 복각 기술을 완벽하게 익혔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차례에 단순히 이미 만들어진 것을 반복하기 보다는 새로운 것을 창조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앞으로 100년 후를 내다보는 무언가를 만들고 싶었습니다."6 ©Kiyotaka Hamamura LVMH는 다양한 소비자층과 시장 부문을 아우르기 위해 여러 브랜드의 지분을 취득하는 리스크 분산 전략을 꾸준히 펼쳐왔다. 특히 최근에는 2022년 에메 레온 도르, 2024년 아워 레가시의 사례처럼 충성도 높은 고객층과 진정성 있는 내러티브를 가진 브랜드들이 인수 대상이 되었으며, L Catterton 역시 APC와 같은 패션 브랜드들을 포트폴리오에 편입해왔다. 따라서 (캐피탈이 지분을 매각했다는 점은 충격적이지만) LVMH가 캐피탈에 관심을 보인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다만 이번 캐피탈 사례는 기존과 달리 사모펀드가 대규모 지분을 취득했다는 점7, 캐피탈이 아시아 기반 독립 브랜드라는 점, 그리고 다른 디자이너 브랜드들과 달리 장인 정신과 제한적인 생산 방식을 고집하며 성장한 브랜드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할 때, LVMH의 목표가 단기적 수익 창출이나 재정 건전성 확보에만 있다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그들이 브랜드의 역사적 가치와 전통을 훼손할 것이라는 우려 대신, 그들이 캐피탈에서 포착한 숨은 전략적 가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LVMH Annual Report 2024 이번 캐피탈의 사례는 기존 포트폴리오 다각화 전략을 넘어, LVMH가 아시아 내 입지를 강화하고 새로운 전략적 교두보를 마련하기 위한 시도로 해석할 수 있다. 여기서 입지 강화는 판매 시장이나 생산 거점으로서 아시아가 아니라, 디자인 헤게모니의 새로운 중심지로서 재배치된 아시아를 가리킨다. LVMH가 자신들의 기원이자 우위를 점하고 있는 서구 중심적 패션 담론의 지정학적 재편에 대비하는 배경에는 “메이드 인 차이나”라는 기표가 서구 럭셔리 브랜드들의 아우라를 침식시키고 있는 현실이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일본 전통 수공예와 미국 워크웨어를 성공적으로 결합해 온 캐피탈은, 오프 화이트처럼 다른 스트릿웨어와 달리 럭셔리 브랜드들을 자가당착에 빠뜨린 품질 문제로부터 자유롭다고 볼 수 있다. 즉 LVMH는 캐피탈이 제시하는 수제작의 불완전함과 비효율성, 그리고 아시아 기반이 새로운 럭셔리를 정의하는 새로운 기준이 될 가능성에 대비했을 수 있다. 캐피탈의 의류를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잘못된’과 ‘비극적인’이란 단어 사이에서 고민하게 됩니다. (...) 그들의 모토는 “왜 안되겠어?”로 보입니다.8 ©Getty Images / Stefano Rellandini 결국 LVMH의 캐피탈 지분 취득은 오리엔탈리즘적 시각에서 일본의 장인 정신을 상업적으로 활용하려는 차원을 넘어 패션 산업 내에서 아시아의 위치성을 재정의하는 전환점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는 작년 LVMH가 오프 화이트 지분 취득을 포기한 맥락과도 연결된다9. 표면적으로 이 소식은 LVMH의 스트리트 웨어 시장에 대한 회의와 최고급 럭셔리 시장에의 집중으로 해석할 수 있으나, 실제로 LVMH는 ‘럭셔리’를 정의하는 독점성, 절대적 품질, 그리고 독특한 스토리와 경험의 본질이 근본적으로 재구성되는 차원에서 자신들의 포트폴리오를 조정하고 있다고 봐야 하며, 이 과정에서 캐피탈 지분 취득이 디자인 헤게모니를 재편하는 중요한 변곡점이 된다. 이 지점에서 우리가 경계해야 할 점은 LVMH와 같은 글로벌 럭셔리 그룹이 인정하는 아시아성이 어떤 기준으로 정의되고 표준화될지에 대한 문제다. 즉 앞으로는 기존 컬렉션에서 드러나는 영감을 받았다는 명목하에 무분별한 문화 전유나 표면적으로 심미성을 차용하는 문제를 넘어, 장인 정신, 수공예 등이 ‘인정할 만한 아시아성’의 표준이 되어버림으로써 결과적으로 아시아 패션이 제한되는 새로운 형태의 오리엔탈리즘이 도사할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 1 19세기에서 20세기 초 일본 북부 시골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려진 일본 직물 공예 기법. 의류나 침구의 수명을 연장하기 위해 폐직물을 이어붙여 내구성을 높인 패치워크 기법이다.2 에도 시대부터 전해져 내려온 손바느질 기술, 캐피탈은 원단을 강화하는 이 바느질 기법을 바탕으로 “100년 동안 입을 수 있다”는 의미의 센추리 데님 (Century Denim) 라인을 전개함.3 2016년 Catterton Partners, LVMH 사모펀드, 아르노 가족 지주회사의 합병으로 탄생.4 https://www.highsnobiety.com/p/kapital-lvmh-lcatterton-investment/5 일본 전통 쪽 염색 기법6 https://www.gq.com/story/kapital-denim-is-a-japanese-paradise7 아워 레가시와 에메 레온 도르 모두 소규모 지분 취득으로 발표됨.8 https://www.newyorker.com/magazine/2016/03/28/david-sedaris-shops-for-clothes-in-tokyo9 https://www.voguebusiness.com/story/companies/off-white-sold-by-lvmh-to-bluestar-alliance BY MUYO PARKMAY 19, 2025 >READ THE ENGLISH VERSION OF THIS ARTICLE> READ OTHER ARTIC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