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xiom Films 요지 야마모토는 빔 벤더스의 다큐멘터리 ‘도시와 옷에 관한 노트'에서 자신에 대해 이렇게 단언했다. “저는 패션 디자이너가 아닙니다. 저는 양재사입니다.” 이 선언은 당시 서구 패션을 지배하던 일시적인 변덕과 덧없는 유행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자신의 장인 정신과 철학을 대변하는 발언으로 보인다. 실제로 1981년, 레이 가와쿠보의 꼼데가르송과 함께 ‘패션 수도' 파리에 등장한 이 일본인 양재사는 기존 패션 규범에 도전하는 전위적 디자인으로 주목을 받으며 패션 미학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마치 패션의 영적 스승과 같은 위치에 오른 지금, 그가 견지하던 ‘옷 만들기'에 천착하는 자세는 패션의 상업화 및 대량생산에 대한 비판적 시각과 패션 디자이너의 본질을 아우르는 하나의 태도가 되었다. ©Adidas 하지만 요지 야마모토 또한 상업적 이해관계와 재정적 생존력에 의해 좌우되는 산업 내에서 자신의 브랜드를 운영할 수밖에 없었다. 1980년대 그의 확신에 찬 자기 정의와 대조적인 2003년 스포츠 브랜드 아디다스와의 협업으로 탄생한 Y-3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대형 스포츠 브랜드와의 협업은 대량생산 및 패션의 상업적인 면모와는 불가분한 관계에 있다고 말할 수 있기에, 그는 자신의 ‘양재사' 정신과는 거리를 두어야 했다. 요지 야마모토가 ‘양재사'로서의 정체성과 패션의 상업성 사이에서 타협하며 유지되어 온 Y-3는 수많은 디자이너 브랜드와 스포츠 브랜드 간 협업의 성공적인 선례로 자리매김했지만, 동시에 그가 순수한 의미에서의 양재사로 더 이상 머무를 수 없게 되었음을 의미하기도 했다. ©Axiom Films 실제로 미국 패션 공과대학교의 사회학 교수 유니야 가와무라는 요지 야마모토, 레이 가와쿠보 등 일본 디자이너들의 1980년대 파리 진출이 패션 산업에 미친 영향을 분석하는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 바 있다. “일본의 아방가르드 디자이너들의 파리 진출은 프랑스 패션의 명성에 도전했다고 알려졌지만, 오히려 그들은 파리의 패션 내 입지를 강화했다. (…) 이 디자이너들은 복식 미학에 도전하는 데 성공했을지 몰라도 패션의 체제 자체를 전복하지는 못했다.”1 이 대목은 요지 야마모토가 패션 산업의 상업적 논리를 피할 수 없었던 당시의 상황과 맞닿아 있다. 비단 Y-3의 사례가 아니더라도, 그는 이미 1980년대 당시 유행의 발상지인 파리 패션 위크에서 컬렉션 단위로 옷을 선보이는 순간 자신은 양재사로만 머무를 수 없음을 어느 정도 예견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가 ‘패션 디자인’이 아닌 양재를 공부했던 배경을 고려하면, 그에게 양재사라는 호칭은 기존 패션 디자이너들과의 차별화보다는 그저 스스로에 대한 솔직한 고백에 가까웠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양재사’ 발언이 마치 히포크라테스 선서처럼 ‘진정한 디자이너'의 태도를 대변하며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음을 상기해 보면 양재사 요지 야마모토 본인과 패션 브랜드 요지 야마모토 사이의 간극은 비단 야마모토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Getty Images / Stephane Cardinale/Corbis 이런 양재사와 패션 디자이너의 비교는 현재까지도 테일러, DJ, 감독, 예술가 등의 개개인의 정체성이 이 산업 아래에서는 유행에 얽매인 패션 디자이너에 종속되는 본질적인 딜레마를 상징한다. 아무리 독창적이고 전복적인 옷이라도 일단 컬렉션 단위로 공개되어 패션 체제 아래에서 대중과 평론가의 인정을 받으면 자연스레 유행의 일부로 편입된다. 이는 개인의 창의성과 독자성이 패션 산업의 상업적 논리에 편입되는 모순적 상황을 보여준다. 따라서 단순히 자신의 정체성을 옷과 컬렉션을 통해 규명하는 것으로는 20여 년 전 유니야 가와무라가 분석한 바와 같이 패션의 체제에 도전할 수 없다. 과거 회귀를 반복하며 시간의 반복되는 굴레에 가두는 패션 체제는 지금은 희생자인 당신을 다음 세대에서는 ‘디자이너들의 디자이너’ 혹은 ‘디자인’ 그 자체가 되어 이 체제에 공조하도록 만든다. 이는 개인의 창의성을 체제 내에서 순환, 재생산되는 하나의 양식으로 전락시키는 패션 산업의 구조적 문제다. ©Comme des Garçons 확실히 요지 야마모토를 비롯한 20세기 위대한 디자이너들의 도전과 실험, 그들의 전위적인 패션은 이제는 하나의 스타일로 제도화되었다. ‘디자인으로 디자인에 저항하기'의 한계가 분명한 오늘날, 개인의 정체성과 메시지를 반영하는 전통적인 형태에서 벗어난 옷에서 우리는 아방가르드를 발견하기 어렵다. 아방가르드는 더 이상 ‘새로운 옷’을 창조하려는 고독한 작가에게서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아방가르드는 패션 디자인 자체를 완전히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계절과 무대, 시장에 맞춰 끊임없이 새로움만을 위한 재창조가 강요되는 지금의 체제에 대한 저항에서 찾을 수 있다. 1 Yuniya Kawamura (2004). The Japanese Revolution in Paris Fashion, Fashion Theory, Volume 8, Issue 2, pp. 195-224 BY MUYO PARKMAY 31, 2024 >READ THE ENGLISH VERSION OF THIS ARTICLE> READ OTHER ARTIC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