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센스가 설계하는(혹은 했던) 것

Editor’s Comment:아래 글은 SSENSE가 파산 보호 신청을 발표하기 이전에 작성되었습니다. 2025년 8월 25일, 해당 소식을 접한 이후 본문의 시의성에 대한 내부 논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SSENSE는 패션 업계에서 가장 테크 기업다운 접근으로 온라인 패션 업계를 선도해왔습니다. 지난 10여 년간 새로운 소비 패턴을 형성해 온 SSENSE의 족적에 대한 분석은 향후 나타날 ‘차기 에센스 post SSENSE’와 패션 유통 생태계의 변화를 이해하는 데 참고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 본문은 SSENSE의 파산보호 신청에 결정적이었을 미국 행정부의 캐나다 관세 부여 이슈는 다루고 있지 않습니다. ©SHINSEGAE 당시 미스코시 경성점은 단순히 물건을 판매하는 백화점이 아니었습니다. 선진 문화를 흡수, 전파하는 ‘문화 살롱’이자, 근대를 직접 느낄 수 있는 경성 최고의 명물이었죠. 그래서 경성의 근대 문물을 소개하거나 경성 관광 기념엽서에 미스코시 경성점의 외관이 자주 등장하였습니다.¹ 과거 백화점은 상품을 한데 모아 비교하고 구매할 수 있는 편리함과 더불어 유리창 너머의 화려한 진열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당대의 고급 라이프스타일과 최신 유행을 제시했다. 소비자들은 백화점 전면을 장식한 거대한 유리창 너머로 새로운 상품을 구경하고 유행을 읽으며 고급문화를 시각적으로 향유하는 동시에 구매 욕구를 자극받았다. 이는 진열된 상품을 매개로 특정 라이프스타일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고 유행을 따르는 행위 자체가 즐거움으로 이어지는, 근대적인 소비 경험의 시작이었다. 오늘날 디지털 환경에서는 에센스가 과거 백화점의 등장과 비견될 수 있는 또 한 번의 패러다임의 전환을 보여주고 있다. 모두가 백화점 쇼윈도를 웹사이트에 그대로 옮겨오는 데 몰두할 때, 에센스는 최초의 백화점이 그랬듯 시대에 맞춰 소비 방식을 바꾸고 있다. Instagram @ssense 에센스를 떠올리면 연상되는 특유의 연출 – 모델의 정형화된 자세, 무심한 표정, 카메라를 외면하는 시선 – 은 하이엔드 패션부터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 스트리트 패션까지, 사실상 거의 모든 스타일과 디자인을 하나의 시각적 문법 아래 통합한다. 이처럼 고도로 통제된 연출 방식은 옷이 지닌 입체적 형태나 고유한 원단의 촉감 같은 개성을 제거하고, 오직 평면적인 시각 정보만을 남긴다. 그들은 패션 소비의 디지털화가 메타버스 아바타의 가상 아이템을 고르는 정도가 아님을 보여줬다. 오히려 에센스가 제시하는 전환은 사용자가 일관된 크기와 간격으로 배열된 옷 이미지를 무한히 스크롤 하며 배회하는 디지털 아케이드 경험, 그리고 이 과정에서 옷 본연의 감각적 경험이 자연스레 배제되는 도중에 이루어진다. 결과적으로 소비자들은 다른 무엇보다 이미지 자체의 시각적 설득력에 의존해 구매를 결정하는 새로운 소비 패턴을 무의식적으로 체득하게 된다. Instagram @ssense 에센스는 2015년 032c의 창립자 요르그 코흐(Joerg Koch), 2022년 하이스노바이어티(Highsnobiety) 편집장 톰 베트리지(Thom Bettridge) 등의 업계 주요 인사들을 영입하며 콘텐츠 제작 역량을 크게 강화해 왔다. 백화점과 같은 전통적인 유통 채널에 도전하던 에센스가 패션 매거진 등 기성 미디어 플랫폼에까지 그 영역을 확장한 셈이다. 이들은 일방적으로 특정 유행과 취향을 규정하고 설파하는 오피니언 리더 대신, 소셜 미디어에서 빠르게 확산하는 밈처럼 대중 사이에서 자생하고 공유되는 즉각적인 반응을 자신들의 콘텐츠와 상품 큐레이션에 적극적으로 반영한다. 이 전략은 소비자들이 에센스의 콘텐츠에 자신들의 관점이 녹아있다고 느끼게 함으로써 플랫폼에 대한 무의식적인 친숙함과 정서적 유대감 형성으로 이어진다. 이로써 에센스는 마치 백화점이나 거리를 거닐며 타인과 어우러지는 듯한 현장감을 제공하면서도 유행 추종보다 각자의 취향에 기반하는 민주적이고 개방된 공간이라는 인식을 확보했다. Captured from SSENSE.com on July 28, 2025. 그러나 이러한 외견상의 평등과 자율성 이면에는, 공공연히 알려진 에센스의 기술 중심 기업으로서의 면모와² 시장 지배력이 맞물려 만들어내는 보이지 않는 통제가 존재한다. 달리 말해 디자이너들과 위험을 함께 감수하던 이 플랫폼은 점차 모든 브랜드가 생존을 위해 의존할 수밖에 없는 시장의 포식자로 변모했다. 에센스 입점 자체가 신생 브랜드에게 성공 가능성을 어느 정도 보장하는 등용문처럼 여겨지면서, 역설적으로 브랜드의 상업적 성패가 플랫폼의 편집 방향성과 보유 고객 데이터 및 추천 알고리즘에 좌우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일례로 에센스의 막대한 시장 영향력은 브랜드들을 대규모 할인 정책에 사실상 반강제적으로 참여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이는 장기적으로 상품의 전반적인 가격 상승을 부추기면서 브랜드 수익성을 심각하게 저해하여 결국 자금력이 부족한 신진 디자이너들의 생존을 위협한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³ 나아가 에센스는 내부 판매 데이터와 자체 트렌드 예측을 바탕으로 디자이너에게 특정 제품의 생산을 제안해 브랜드가 본래 의도하지 않았던 제품을 만들도록 유도한다.⁴ 버질 아블로, 뎀나 바잘리아, 매튜 윌리엄스와 같은 디자이너들이 패션계에서 유서 깊은 럭셔리 하우스의 슈퍼스타가 되기 훨씬 전부터 에센스는 그들의 데뷔 컬렉션을 취급했다. (...) 에센스는 또한 프랑스 디자이너 마린 세르가 파리 자택 침실에서 컬렉션을 선보이던 초기 시절부터 그녀를 지원했다. 세르는 이렇게 말했다. “그들이 저에게 왔을 때 정말 특별했어요. 그들은 아이디어가 있었고,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려 했죠.”⁵ ©Canadian Business / Richmond Lam 에센스가 구축한 이른바 ‘민주적인’ 플랫폼은 과거 유통 업계의 기득권이 형성했던 유행의 주도권을 둘러싼 위계를 허문 것처럼 보여왔다. 하지만 ‘상품이 스스로 말하게 둔다’, ‘누가 물건을 만드는지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라는 그들의 주장⁶ 뒤에는 모든 디자이너가 에센스를 거쳐야만 비로소 이야기할 기회를 얻을 수 있는 현실이 있다. 결국 에센스를 비롯한 온라인 플랫폼들은 백화점의 쇼윈도로 구분되던 유행의 선도자와 추종자 간의 경계를 지우는 대신 자신들이 수집한 데이터를 새로운 기준으로 삼아 패션을 정답이 존재하는 영역으로 만들고 있다. 디자이너, 소비자, 에디터 할 것 없이 우리 모두는 플랫폼 내에서 유통될 수 있는 ‘패셔너블함’의 기준에 부합하는지 스스로를 검열하고 또 평가받고 있다. 매치스 패션과 에센스에서 제품을 판매하는 한 디자이너는 두 사이트의 MD와 바이어들이 내부 데이터를 기반으로 그의 라인에 생산할 특정 제품을 제안했다고 밝히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 이로 인해 많은 브랜드들이 원래라면 하지 않을 일을 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모든 것이 획일화됩니다.⁷ ¹ 배봉균 (2015.07.11.) 근대의 아이콘, 한국 최초의 백화점 (1편), 신세계그룹 뉴스룸. Available at here² 전현직 직원들은 에센스가 멋진 옷을 판매하는 곳이라기보다 모든 결정이 숫자로 뒷받침되어야하는 테크 기업에 더 가깝다고 진술했다. Nathan Taylor Pemberton (2021.11.24.) What Is SSENSE?, The New York Times. Available at here ³ Charles Etoroma (2025.04.15.) Is SSENSE Sale Culture Damaging the Fashion Industry?, COMPLEX. Available at here ⁴ Blackbird Spyplane (2023.06.20.) Is SSENSE hurting the cool-clothes ecosystem?. Available at here ⁵ Nathan Taylor Pemberton (2021.11.24.) What Is SSENSE?, The New York Times. Available at here⁶ Charles Etoroma (2024.08.05.) The creative behind the marketing phenomenon SSENSE, NSS Magazine. Available at here ⁷ Blackbird Spyplane (2023.06.20.) Is SSENSE hurting the cool-clothes ecosystem?. Available at here BY MUYO PARKOCTOBER 13, 2025 >READ THE ENGLISH VERSION OF THIS ARTICLE> READ OTHER ARTIC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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