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rien Dirand 패션 업계에서 디자이너를 ‘작가(auteur)’라고 지칭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하지만 소위 패션을 ‘예술의 경지’로 승화시킨 인물들과 그들의 디자인이 때로는 패션쇼에서, 때로는 미술관에서 조명 받으면서 그들은 ‘디자이너’라는 단어로 충분히 설명될 수 있는지, 혹은 그들은 그들 자신을 어떻게 정의하는지 같은 질문이 반복됐다. 결국 지루할 정도로 반복되어 온 “패션은 예술인가?”라는 질문처럼, 우리는 은연중에 자신의 비전과 철학을 디자인에 녹여내는 디자이너들을 동경하며 그들을 디자이너 너머의 역할로 위치 지어왔다. ©Getty Images 이처럼 패션을 패션으로 바라보지 않고 예술로 취급하는 시도에는, 쿠튀리에들이 자신들을 창작 활동을 완전히 통제하는 중앙 집권적 권위자로 묘사하려던 역사적 배경이 있다. 당시 하이 패션은 이들 하우스의 통제자들을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고급 예술의 영역으로 진입할 수 (최소한 그러한 가능성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수) 있었다. 대표적으로 크리스티앙 디올,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 코코 샤넬과 같은 인물들은 우리에게 단순히 뛰어난 쿠튀리에로 기억되지 않는다. 이들은 시대정신을 읽어내고 새로운 실루엣을 창조한 천재적 비전의 소유자를 넘어 패션을 거대 산업이자 고급 예술의 영역으로 격상시킨 선구자로 각인되어 있다. ©Salons Galahad Ltd 이들의 시대가 저물었음에도 그들의 하우스는 오히려 글로벌 럭셔리 기업으로 성장하면서, 업계는 디올의 이브 생 로랑이나 샤넬의 칼 라거펠트처럼 하우스를 통제할 수 있는 계승자를 필요로 했다. 특히 칼 라거펠트가 샤넬의 후계자가 되었던 1980년대는 공교롭게도 미술대학에 패션 프로그램들이 보편화되고 젊은 아방가르드 디자이너들이 대거 등장하던 때이기도 하다1. 특히 영국 예술 학교 출신 디자이너들은 “자신만의 권리를 가진 작가이자 예술가로서의 패션 디자이너라는 새로운 현상2”을 만들어냈다. 대표적으로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의 존 갈리아노와 알렉산더 맥퀸은 디자인뿐만 아니라 광고 캠페인까지 총괄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등장하면서 패션 업계는 모든 것을 통제하는 역할로서 디자이너에 익숙해진다. 달리 말해 패션 디자인의 다음 세대를 포함해 업계는 하이 패션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디자이너의 의도와 메시지라는 인식을 공고히 함으로써 패션 디자인은 ‘저자’의 ‘텍스트’로 여겨진다. ©Getty Images 작가적 권위의 확립은 패션 디자이너의 위상과 역할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과거 테일러와 드레스메이커들이 발언권이 없던 시절, 그들의 역할은 부유한 클라이언트의 요구에 부응하는 옷을 제작하는 데 그쳤다. 그러나 디자이너가 ‘작가’로 거듭나면서, 디자인은 고객의 요구사항 너머 디자이너의 철학을 담아내는 매체가 되었다. 이는 패션 디자인을 의복 제작 이상의 예술적 목적을 가진 활동으로 승화시켰고, 패션 업계가 더 폭넓은 사회문화적 담론에 참여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영국 출신인 워스3는 의류 및 부자재 상점(프랑스어로 “mercier”)인 가즐랭에서 처음 일을 시작했는데, 그는 의상에 대해 조언을 구하는 개인 고객층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는 전통적으로 발언권이 없던 재단사의 위치를 고려할 때 전에 없던 양상이었다4. ©Vivienne Westwood 과거 쿠튀리에들부터 현대 패션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들까지 작가와 동일시되는 디자이너들의 계보는 “패션은 예술인가?”라는 오랜 질문에 마침내 답할 인물들의 역사인 것만 같다. 그들은 단순히 역사에 남을 디자인을 창조하는 데 그치지 않고 디자이너의 역할 자체를 확장해 왔기 때문이다. 스텔라 맥카트니의 환경 운동,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기후 운동, 뎀나 바잘리아의 반전 메시지처럼 우리는 이제 패션 업계의 ‘작가’들이 사회정치적 담론에 목소리를 내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요약하자면 큰 틀에서 쿠튀르 산업의 발전 이후 현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개념의 확립까지 서구 패션은 디자이너를 중심으로 내세우고 작가로 위치시키면서 발전해 왔다고 볼 수 있다. ©Julien Vidal 하지만 가장 작가주의적 디자이너에 가까워 보이는 마르탱 마르지엘라의 이야기는 이러한 작가주의적 진보의 역사가 그다지 설득력 있지 않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급진적이고 실험적인 그의 해체주의적 시도들은 결국 의복의 물질적 해체를 시도한 디자인 아카이브로만 현재 남아있다. 이미 패션계에서 디자이너의 권위적 지위가 확고해진 시기에, 작가처럼 브랜드를 통제하는 권위주의적 역할로서의 디자이너라는 개념에 도전한 그의 또 다른 해체주의적 시도 - 4개의 스티치 - 는 역설적으로 또 다른 브랜드의 기호가 되어버렸다. 결정적으로 그가 떠난 하우스에는 또 다른 천재 작가 존 갈리아노가 하우스의 계승자로 채워지면서, 그가 추구했던 해체주의적 시도는 절반의 성공으로 남게 되었다. ©Sophie Aurenche / RTL 결국 패션 디자이너들의 작가로서의 위치는 현대 패션 소비문화가 주로 비판받는 지점인 피상적으로 브랜드의 이미지를 구매하는 경향이 짙어지는 일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패션 업계 속 작가의 등장을 단순히 브랜드의 이미지를 판매하기 위한 마케팅 전략으로만 평가절하할 수도 없다. 작가주의는 창작물에 대한 정당한 권리 확보를 위한 노력이었고, 수동적인 제작자라는 디자이너의 틀에서 벗어나 창의적 주체로 거듭나고자 했던 권력 투쟁이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지금의 패션 디자인이 스튜디오 내에서뿐만 아니라 생산과 유통, 소비 과정 속 협업적 환경을 거쳐 구현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업계에 만연한 작가적 역할로 디자이너를 바라보는 관점은 패션 시스템의 작동 방식을 완벽하게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이다. 과거 디자이너의 역할이 고객의 요구에 응하는 드레스메이커로 제한받아 그들의 창의성이 간과되었듯, 작가라는 지위는 산업의 다른 참여자들의 역할 뿐만 아니라 디자이너의 다른 역할을 소외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Comme des Garçons 요약하자면 작가 패러다임은 디자이너에게 너무 과도한 권위를 부여해 특정 개인을 옷의 기원으로 위치시키면서 디자인의 해석 가능성을 제한한다. 작가와 대등한 지위로 디자이너들을 미화하거나 신성시하려는 시도가 역설적으로 패션이 예술로 거듭나는 것을 저해하는 셈이다. 디자이너는 옷을 만들거나 아이디어를 스케치하는 것에 그치지도 않고, 연출, 아카이브, 편집, 촬영에 개입해 브랜드를 지휘하는 것에 그치지도 않는다. 과거 ‘양재사’나 현재의 ‘작가’나 ‘예술가’라는 틀에 가두어 특정 행위만 바라보는 렌즈는 결국 프레임 밖의 복합적인 활동에 대한 이해를 놓치게 한다. “나는 예술가도 아니고, 패션 디자이너도 아닙니다. 나는 그저 패션과 옷을 재료로 한 창작을 통해 사업을 일구는 것뿐입니다. 이 점이 매우 중요합니다. 나를 어떤 틀에 가두지 말아 주세요.”라고 가와쿠보는 말했다5. 1 Jeppe Ugelvig, trans. Eun-wook Nam and 3 others, FASHION WORK: 25 Years of Art in Fashion, DADA, 2022, p. 61.2 Angela McRobbie, British Fashion Design: Rag Trade or Image Industry?, Routledge, 1998, p. 8.3 찰스 프레데릭 워스 (1825-1895). 최초의 쿠튀리에로 불리는 영국 출신 디자이너. 파리에서 오트 쿠튀르를 창시했으며, 의상에 자신의 이름을 라벨로 부착한 최초의 디자이너이기도 하다. 시즌별 컬렉션, 살아있는 모델을 활용하는 등 현대 패션의 기틀을 마련해 디자이너의 위상을 재단사에서 예술가적 지위로 격상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4 David Zajtmann, ‘Using a Professional Organisation to Enhance its Reputation. The Case of the Parisian Haute Couture. A Longitutidnal Studey (1973 - 2008)’, Mode de Recherche, 2011, pp. 14-20.5 Eleanor Gibson, "Comme des Garçons is "nothing about clothes" says Rei Kawakubo", Dezeen, 2019. 5. 9. Available at here BY MUYO PARKJANUARY 29, 2025 >READ THE ENGLISH VERSION OF THIS ARTICLE> READ OTHER ARTIC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