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gue / Niall Mcinerney ‘졸업 패션쇼’는 학교와 국가를 막론하고, 상업성과 실용성을 배제하며 오롯이 예술성을 추구하는 무대처럼 보인다. 학생들의 작업은 대다수의 사람에게 난해하게 다가올 수 있지만, 패션에 관한 철학적 탐구와 옷의 형태에 대한 실험에 방점을 두고 하이 패션의 아방가르드적 계보와 연속성을 가지고자 하는 시도이기에 그 의미가 있다. 현대 패션 교육의 지금과 같은 방향성은 20세기 중반, 순수 미술 학교들이 패션 학부를 설립하면서 본격화되었다1. 패션의 산업적 변화 속 디자이너들이 전통적인 기술자에서 ‘예술가’ 또는 ‘작가’로 재정의되던 시기와 맞물려, 이 교육의 전환은 패션을 공예, 기술의 영역에서 순수예술의 영역으로 재정립하는 데 일조했다. ©Karel Fonteyne 1980년대 이후 앤트워프 식스2라는 이름으로 런던에서 활약하거나, 90년대 영국 디자이너들의 파리 쿠튀르 하우스 진출처럼3 이들 학교의 졸업생들이 본격적으로 업계에 이름을 떨치기 시작하면서, 이들 교육기관은 자연스레 국제적 명성을 얻게 되었다. 지금까지도 패션 교육의 중심지로 여겨지는 ‘패션 스쿨’들은 패션 디자인을 디자이너가 사회문화적 변화를 반영하고 컬렉션을 통해 자신의 철학과 이야기를 전달하는 행위로 정의하면서 독립적인 디자이너들의 양성기관으로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립해 왔다. 패션 디자인을 상품 생산을 넘어 한 명의 작가로서 시대정신을 포착하고 문화적 담론을 생산하는 예술적 실천으로 바라보는 그들 고유의 교육 모델은 앞선 사례들처럼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졸업생들을 통해 그 성공을 입증받았다. 시간이 흘러 이들의 방식은 학교와 글로벌 럭셔리 기업과의 인턴십, 장학 제도 등의 산학 협력을 통해, 혹은 패션위크 참여나 주목도 높은 졸업 패션쇼 등을 통해 제도적으로 더욱 공고해졌다. 이곳(센트럴 세인트 마틴과 런던 컬리지 오브 패션)은 다양한 교육 방식을 통해 ‘스타’ 디자이너나 작가주의적 디자이너들의 독특한 주관성을 형성합니다. 이러한 교육기관들은 다변화된 패션 노동시장을 위한 인재 배출기관으로서 중추적 역할을 차지하고 있습니다4. UAL Sign Install. Installation by Merson Group. Photography by Ana Blumenkron. 하지만 패션 업계에서 빅뱅과도 같았던 20세기 후반은 신자유주의가 확산하며 대학 교육 전반에 시장 논리가 본격적으로 침투하던 시기와 일치한다. 당시 영국 패션 교육 기관들도 마찬가지로 기업가적 모델로의 구조적 재편을 겪었다. 교육의 효율성과 시장 경쟁력 강화라는 명목 아래 종합대학으로의 통합5, 등록금 인상, 교직원의 고용 불안정화, 미술 교육의 계량화 및 등급화가 체계적으로 진행되었다. 이런 신자유주의적 변화는 교육 현장의 제도에서 여전히 일종의 규율로 작동한다. 가령 창의적 표현에만 지나치게 비중을 두는 편향적인 커리큘럼 설계나, 미술 대학 간 서열화 및 경쟁 구도, 그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창의성을 등급화하는 평가 방식은 업계의 소수 엘리트, 즉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혹은 그 명성에 준하는 극소수의 인원들이 주도하는 승자독식 구조를 학교에서부터 체험하고 받아들이게 만든다. ©London College of Fashion / Ana Blumenkron 이와 같은 창의성 평가 체계는 2025년 현재까지도 여러 방식으로 구현되고 있다.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처럼 선발된 소수의 학생만이 주목도 높은 패션쇼에 참여할 수 있고 나머지 학생들은 상대적으로 주변화된 전시 형태로 졸업 이벤트를 치르거나, 런던 컬리지 오브 패션의 경우 패션 디자인 전공이 가장 가시성 높은 공간을 차지하고 마케팅이나 패션 이론 등 다른 전공은 지하나 외곽 공간으로 밀려나며 시각적이고 표현적인 패션 디자인을 특권화하는 위계질서가 공간적으로 구현된다. 이 체제는 앞서 성공한 디자이너들이 패션 학교의 교수진으로 복귀하는 관행을 통해 재생산됨으로써 최종 완성된다. 표면적으로 실무 경험 전수라는 가치를 표방하는 이 순환구조는, 특정한 경력을 보편적 모델로 제시함으로써 성공 서사와 미학을 규범화해 다양한 창의적 가능성을 제약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많은 응답자는 이러한 표현력 중심의 창의성 강조의 단점을 논의하며 상업, 경영 및 기술 교육 부재의 약점을 지적했습니다. (...) 이러한 기술에 대한 역량 부족은 경력 개발에 걸림돌이 될 수 있으며 소매 및 제조 회사와의 관계 구축에도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p.11 - 126 ©TikTok 이러한 구조의 핵심은 패션 교육이 표면적으로 표방하는 예술적 실험과 비판적 사고의 실상이 산업과 마찬가지로 시장 경쟁력과 브랜드 가치 창출이라는 상업적 목표에 종속되어 있다는 점이다. 패션 스쿨의 교육 방식 아래에서 학생들은 자발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창의성의 특정한 정의와 기준을 내면화하고 자신의 작업을 시장이 요구하는 틀에 맞춰 검열하게 된다. 교육이 구축한 창의성의 프레임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학생들의 미래까지 규정해 왔다. 학생들은 경제적 안정성 대신 상징적 자본 획득을 목표로 자신의 브랜드를 전개하는 등 신자유주의적 노동 시장의 불안정성을 자발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처럼 패션 교육 기관은 작가주의로 포장된 패션 산업의 엘리트주의를 더욱 강화하는 결과를 초래한, 산업 전체의 창의성 공장으로 기능한다. 학생들 개개인의 창의성과 개성 자체는 실험적이고 독창적일지라도, 그 새로움 자체는 쉽게 뜨고 사라지는 유행처럼 빠르게 소비되고 대체될 수 있는, 언제든지 대체할 수 있는 상품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Fédérationde la Haute Coutureet de la Mode 물론 패션위크 데뷔가 신생 브랜드가 추구해야 할 유일한 길이 아니게 되었듯, 창작자와 디자이너들은 늘 기존의 구조와 서사를 우회하거나 의문을 제기하며 대안적 경로를 모색해 왔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이러한 움직임들이 새로운 형태의 상품화와 시장 흡수로 이어져 왔다. 한 학기 만에 학교를 떠난 비비안 웨스트우드가 현재 웨스트민스터 대학7의 ‘자랑스러운 동문’으로 기억되듯, 기존 미디어의 권위를 해체하는 듯한 소셜 미디어가 결국 그들의 명성을 끊임없이 재생산하는 도구가 되었듯, 또 이미 한때 자유롭게 실험하고 실패하던 아방가르드 디자이너들의 반체제적 실천이 패션 산업의 경제적 성장을 위한 새로운 동력원으로 흡수되었듯이 말이다. 패션스쿨은 확실히 지금껏 수많은 인물들을 배출하고 학생들을 끊임없이 동기부여 하는 창의성의 산실이었지만, 동시에 그들은 학생들의 창작 활동이 그 ‘천재’들의 뒤를 이어 시장에 흡수되도록 한 것도 분명하다. 이제 학생들은 학력이 자기 이력서의 한 줄을 차지하듯, 자신의 창의성이 교육기관의 포트폴리오로 전유되었는지, 그리고 자신들이 “창의성을 발휘하라”는 제도적 호명에 순응해 왔는지 질문해야 한다. 1 1948년 영국 왕립예술학교의 패션 학부 설립, 1963년 앤트워프 왕립 예술학교 패션 학부 설립.2 사진 왼쪽부터 마리나 이(Marina Yee), 드리스 반 노튼(Dries Van Noten), 앤 드뮐미스터(Ann Demeulemeester), 월터 반 베이렌동크(Walter Van Beirendonck), 더크 비켐버그(Dirk Bikkembergs), 더크 반 샌(Dirk Van Saene).3 1996년 존 갈리아노의 디올과 알렉산더 맥퀸의 지방시, 그리고 1997년 스텔라 맥카트니의 클로에.4 McRobbie, A., Strutt, D. and Bandinelli, C. (2022) Fashion as Creative Economy: Micro-Enterprises in London, Berlin and Milan. Kindle Edition.5 1986년 LCF와 CSM을 비롯한 런던의 6개 독립 예술 교육 기관들이 London Institute로 통합, 2003년 대학 자격을 부여받고 현재의 런던 예술 대학(UAL)이 되었다.6 Casadei, P. and Gilbert, D. (2022) ‘Material and symbolic production of fashion in a global creative city. Industry’s perception of the 21st century London’, Creative Industries Journal, pp. 1–22. Available at here7 당시 해로우 예술 대학 BY MUYO PARKAPRIL 1, 2025 >READ THE ENGLISH VERSION OF THIS ARTICLE> READ OTHER ARTICLES